2006년 12월 31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어려움, 경쟁, 분쟁이 계속 늘어나는 세상에 새 메시지가 있다. 이 메시지는 인류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며, 지적 생명체로 이루어진 우주 큰 공동체 안에서 인류의 영적 본성과 인류 미래를 새롭게 이해하게 해준다.
이것은 인류가 나아갈 완전히 새로운 길이다. 그리고 필요성과 지혜에 기반을 둔 길이고, 인간 가족에게 다가오는 큰 도전을 직시하는 것에 기반을 둔 길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구축한 것은 인류가 앞으로 직면할 미래에 대비하여 인류를 준비시키는 데 불충분한 것이 사실이다. 미래는 매우 많은 면에서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이제는 인류가 인류 영성의 참된 본질, 모든 생명의 창조주가 인간 가족과 개개인 내면에 심어 놓은 큰 지성을 배워야 할 때이다. 물론 이 큰 지성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지만, 지구 역사에서 극소수만이 이 큰 지성을 발견했고, 큰 지성의 참된 본질·힘·목적을 깨달았다.
이 앎의 힘과 현존은 이제 단순히 소수 엘리트들만의 영역, 앎을 발견하는 데 헌신하고 그 기회를 얻은 소수만의 영역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 앎은 훨씬 더 많은 이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인류가 앞에 놓인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으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 앎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때가 되었으므로 신의 새 메시지가 세상에 있다. 지금은 계시의 시대이다. 이제 이 계시가 필요하다. 인류는 큰 위험인 동시에 큰 기회가 있는 벼랑 끝에 서 있다. 하지만 위험이 명확히 보이고, 위험 자체가 분명해지지 않는 한, 기회를 인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가 지적 생명체로 이루어진 우주 큰 공동체에 출현하므로 새로운 길이 있다. 이 지역 우주에는 다른 이들도 살고 있다. 이들은 기만적인 수단을 통해 지구의 통제권을 얻으려고 하며, 이곳에 있는 매우 귀중한 자원과 이 지구의 전략적 중요성에 접근하려고 한다.
인류는 또한 쇠퇴하는 세상, 즉 식량·물·에너지 등 자원이 감소하는 세상에서 살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으며, 환경이 파괴되고 기후가 영향을 받은 세상, 생명 유지 능력이 훼손되고 제한받는 세상에서 살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큰 사건, 즉 큰 공동체와 만나는 것과 쇠퇴하는 세상을 마주하는 것은 모두 세상의 큰 어둠이다. 이 어둠은 인류가 이전에 직면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크고 더 중대하다 그래서 경고·축복·준비가 담긴 메시지로 신의 개입이 필요했다.
경고는 인류가 이제 끝없는 분쟁을 멈추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쇠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통합해야 하고, 큰 공동체 자체의 현실과 도전에 맞서기 위해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이상 좋은 생각이라거나 단순히 윤리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인류에게 닥친 이 두 가지 큰 도전에는 힘이 있어, 인류를 영원히 쇠퇴로 내몰 수도 있고, 지금까지 지구에서 이루어 본 적이 없는 인류의 통합과 협력을 끌어낼 수도 있다.
오직 절실한 필요성만이 인간의 초점, 인간의 의식, 인간의 행동을 이만큼 바꿀 수 있다. 인간의 통합은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구 자체도 하나의 큰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하나의 큰 공동체이며, 동시에 지적 생명체로 가득 찬 우주 큰 공동체 안에서도 산다.
그러므로 당신의 자유가 얼마만큼 자리잡았든, 그 자유는 이 지구에 접근하려는 이들과 이곳 지구에서 당신이 처한 상황의 현실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보아하니 지구 정부들은 이 점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자국민을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구의 종교 기관들도 이 점을 인지하지 못했고, 따라서 신도들을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준비하기보다는 부, 권력, 지배, 정의, 적대감, 복수를 위해 계속 필사적으로 자기들끼리 투쟁한다.
큰 공동체에 직면하고 쇠퇴하는 세상에 직면하여, 인류는 이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큰 집단 차원에서도 인류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오직 신의 새 메시지에만 그런 전환을 가져올 힘이 있다. 오직 신의 새 메시지만이 개개인 내면에 있는 깊은 앎과 공명할 수 있으며, 인류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오직 신의 새 메시지만이 앎의 수준에서 당신 영성의 깊은 본질을 계시할 수 있다. 즉 당신이 어느 종교,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 왔든, 당신의 경제적 지위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영성의 깊은 본질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당신 내면에 있으며, 어떻게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지를 계시할 수 있다.
이 새 메시지는 세계 종교들과 경쟁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 종교들에게 목적의 명확성과 통일성을 함께 제공하려고 이곳에 왔다. 새 메시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더 많이 협력하도록 세계 종교들에 활기를 불어넣고 그 종교들을 결속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신의 새 메시지에만 이 힘과 효능이 있다. 신의 새 메시지의 힘과 효능은 신비롭다. 신의 새 메시지는 이성을 넘어서, 즉 이의를 제기하고 의아해하고 요구하고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넘어서, 개개인 내면에 있는 깊은 인식에 도달한다.
새 메시지는 개개인에게 불을 붙이는 것과 동시에 인류 모두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고 이곳에 왔다. 새 메시지는 단순히 새로운 믿음 체계도 아니고, 행동에 대한 처방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같은 것을 믿지도, 같은 것을 하지도, 같은 전통이나 같은 교사를 따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이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새 메시지에 있는 부름은 어떤 종교, 국가, 문화권에 속한 사람이든 듣고 응답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응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적은 비율의 사람들만 응답하면 된다. 그들이 응답할 수 있다면, 인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들은 다가오는 변화의 큰 물결을 대비해 인류를 준비시킬 수 있으며, 큰 공동체에서 온 경쟁자를 대비해 인류를 준비시킬 수 있다. 이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
당신은 “우리의 역사와 기질을 고려할 때 어떻게 그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고 궁금해할 수도 있다. 그것은 신의 새 메시지가 세상에 있으므로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이런 메시지가 세상에 없다면, 또 인간의 인식과 독창성에만 맡겨진다면, 당신의 운명은 확정될 것이며, 그 결과는 너무 뻔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운명은 확정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아직 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류가 앞으로 10년 이내에 행동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은 선택지가 더 적어지고 당신과 당신 자녀들의 미래는 훨씬 더 심각하고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다.
인류는 변화의 큰 물결에 직면하고 있다. 이것은 전례가 없다. 지금까지는 전 인류가 한꺼번에 모든 것이 몰려드는 그런 도전에 맞선 적이 없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 도전에 대처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알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준비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당신은 개인 간, 문화 간, 종교 간, 국가 간에 어떻게 큰 통합과 협력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가?
진실로 자신에게 정직하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자신이 정말로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당신에게는 이 모든 답이 없다. 당신은 “이렇게만 된다면” 또는 “저렇게만 된다면”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답이 아니라, 소망이다. 소망은 미래를 대비해 당신을 준비시키지 않는다. 소망은 인간의 활동과 인식의 방향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소망은 주로 인류가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 인류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소망은 인류가 지적 생명체로 이루어진 이 큰 공동체에 출현하는 현실, 즉 이 출현에 내재한 위험과 기회를 대비해 인류를 준비시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 길이 이곳에 왔다. 그리하여 그 길은 개개인을 준비시키고, 개개인에게 불을 붙여 분명히 밝혀주고, 인류에게 자신의 운명과 다가오는 변화의 큰 물결에 대해 큰 인식을 갖게 하며, 인간관계가 어떻게 더 높은 목적의 수준으로 향상될 수 있는지 분명히 알려준다. 그리고 당신에게 삶의 네 기둥을 가르치고, 또 당신이 큰 변화와 격변에 직면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튼튼한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삶의 네 기둥을 구축하게 한다. 또한 지금까지는 창조주가 세상에 제공한 적이 없는 큰 공동체 지혜를 제공한다. 큰 공동체 지혜가 과거에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필요하다.
인류는 이 지혜를 지녀야 하고, 이 관점을 지녀야 하며, 이 큰 공동체 인식을 지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는 준비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 채, 앞도 보지 않고 미래로 들어갈 것이다. 인류는 이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리석음은 비극이다.
지금은 일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시기이다. 지금은 필요성에 기반을 두고, 현재와 미래에 인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이해, 새로운 인식, 새로운 헌신이 필요한 시기이다.
물론 의견도 신앙도 문화적 주안점도 다양할 것이다. 이것은 당연하다. 신은 이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지구를 보호하려는 헌신, 지구 문명을 보호하려는 헌신, 외계에서 온 개입자에게서 이 지구를 지키려는 헌신이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철학·신학·정치학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순전히 필요성에 기반을 둔다.
이것은 마치 불난 집과 같다. 당신은 불이 났을 때 그 문제를 연구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불을 끌 준비만 하면 된다. 지금 세상에는 매우 큰불이 났다. 그 불은 천천히 타오르지만, 힘이 세지고 있다. 그리고 날마다 인간이 무지한 채 부정하고 미신을 믿고 서로 싸우고 경쟁할 때마다 이 불에 기름을 끼얹어 그 힘이 더 세지게 하고, 더 뜨겁게 하여 끄기 더 어렵게 한다.
여기서 새로운 길, 새로운 이해, 새로운 접근 방식,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인류는 새로운 미래,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이 미래는 몹시 힘들고 몹시 위험할 것이다. 이 미래의 큰 기회는 인류 자체를 방어하는 데 통합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큰 기회를 인류에게 제공한다. 이처럼 인류에게 단 한 번의 큰 기회를 주어 인류가 자원을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인간 가족 전체에게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인간의 분쟁을 끝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처음이자 가장 큰 기회를 주어 이 지역 큰 공동체 안에 있는 삶과 영성을 배우고, 삶의 현실을 배울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 계시가 필요하고, 그 계시는 모든 생명의 창조주에게서 와야 한다. 인류는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없고,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다. 인류는 곧 닥쳐올 일,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이 새로운 길의 일부는 신비로울 것이다. 이 길은 당신 내면에 있는 앎에게 말한다. 앎이 어떻게 개인의 내면에서 활성화되는지는 전적으로 신비롭고 인간의 이해 너머에 있다. 하지만 이 길은 대부분 아주 쉽게 보고 알 수 있으며, 새 메시지에서 제공하는 준비에서 알려준다. 이 준비는 앎길을 배우게 하고, 큰 공동체 앎과 지혜를 얻게 하고, 지구 자원을 보존하게 하고, 지구 안에서 인류의 자급자족을 유지하게 한다. 이렇게 자급자족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외세의 설득에 넘어갈 것이다.
이 길의 일부는 인식하는 것으로, 당신은 인류가 큰 공동체에서 살고, 이 지구의 원주민이며, 인간 가족이 우주에서 고립되어 있음을 인식한다. 인류에게는 이 우주에 동행자가 있으며, 그들은 인류에게 그들의 지혜를 전할 수 있고, 실제로 전했다. 하지만 그들은 간섭할 수 없으며, 인류를 구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할 힘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
인류는 스스로 자신을 구해야 할 것이다. 아무도 와서 인류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인류를 구하러 이곳에 왔다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모두 속임수임을 확신할 수 있다. 나약하고 갈등이 있고 점점 더 절망적인 인류를 이용하려고 그들은 이곳에 왔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인류의 통합, 인류의 권한, 인류의 자유, 인류의 주권을 위한 길이 아니다. 그래서 신의 새 메시지가 있으며, 이 메시지는 인간 정신에 불을 붙이고, 인간의 의식을 넓히고, 당신이 마주할 미래를 당신에게 계시하기 위해 있다.
물론 사람들은 근시안적이다. 그들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답을 원한다. 하지만 새 메시지는 인류가 지금까지 거의 대응하지 않은 큰 문제를 다룬다. 새 메시지가 주는 답은 큰 문제를 위한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떤 문제에 신경을 쓰는가? 그 문제들은 무엇인가? 쇠퇴하는 세상에서 그 문제들은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인류가 큰 공동체에서 온 경쟁자들과 개입자들을 직면할 때, 그 문제들은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라.
이 문제들은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처럼 더 큰 맥락에서 보면, 전혀 관계가 없거나, 아니면 더 큰 일에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빨리 해결하고 싶은 것들이다.
심지어 최상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조차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으로 생각하며, 단순히 과거에 밝혀진 것이 어쩌면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 이어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체 풍경이 바뀔 것임을 보지 못한다.
물론 이때 인간이 부정하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았더라도, 당신은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거나 감정적으로 다룰 수 없는 것들, 너무 도전적이거나 너무 신비로운 것들, 너무 압도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경향을 여전히 다루어야 한다. 이 점에서 지식인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단지 조금 더 나을 뿐이다.
그래서 신의 새 메시지가 세상에 있다. 왜냐하면 이 부름이 있어야 하고, 이 경고가 있어야 하며, 이 축복이 있어야 하고, 이 준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에 개입하려는 이들은 인류를 대비해 이미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큰 공동체를 대비해 스스로 준비할 수 없다. 당신은 급격히 쇠퇴하는 세상을 지금 맞이하기 위해 때맞추어 스스로 준비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충분히 많은 사람과 함께 헌신하고 인식한다면, 당신은 스스로 준비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당신은 준비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 그래서 세상에 신의 새 메시지가 있다.
이 큰길은 우주의 다른 선진 종족들이 진화의 큰 전환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우고 직시해야 한 것을 알려줄 것이다. 물론 인류는 진화 상태에 있다. 부분적으로는 다가오는 큰 변화가 진화이다. 조만간 인류는 거대한 환경이자 엄청나게 경쟁적인 환경인 큰 공동체 현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이 환경에 어린아이처럼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제 주안점은 신을 기쁘게 하거나 신을 경배하거나 당신이 원하는 온갖 사소한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 있지 않다. 이제 당신은 신이 당신에게 준 것을 이용해야 한다. 당신은 이제 발견되기를 기다리면서 개개인 내면에 있는 깊은 앎을 불러내야 한다. 믿음은 지금 당신의 기반이 되기에는 너무 나약하고, 너무 취약하고, 너무 변하기 쉽고, 너무 조종당하기 쉽다.
당신은 앎에 큰 기반을 두어야 하며, 그 기반은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만큼 충분히 강해야 한다. 그 기반은 다가오는 변화의 위험한 흐름을 헤쳐 나가게 해줄 뗏목이 될 것이며, 인간이 서로 경쟁하고 싸우려는 성향, 남은 자원을 얻으려고 투쟁하려는 성향을 극복할, 당신 내면의 큰 지혜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앎을 얻을 필요는 없지만, 중대한 변화를 불러오려면 충분히 많은 사람이 이 앎을 얻어야 한다.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의 미래는 균형에 달려 있다. 인류가 가장 위대한 순간에 예술·신학·철학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에서 창조한 모든 것, 인류가 이룩한 선하고 지속 가능하고 유익한 모든 것은, 인류가 준비되지 않으면, 쇠퇴하는 세상에서는 물론 큰 공동체를 맞이하여 길을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새 계시는 단순히 또 다른 선택, 또 다른 가능성이 아니다. 이 계시는 숙고해야 하는 다른 많은 것과 함께 숙고해야 하는 그저 그런 것이 아니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이것이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자유와 안전 보장과 구원을 위해 기도했으며, 이것이 바로 그 응답이다.
하지만 당연히 새 계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보이고, 어쩌면 그들 문화를 통해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 종교 안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 계시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으며, 그들이 생각한 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신의 계시는 결코 이런 것들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신의 계시는 신의 새 메시지이므로, 항상 문화나 종교 밖에서 일어나며, 인류의 기대 밖에서 일어난다. 신의 계시는 인간이 창안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상상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지만, 변화의 큰 물결을 보고 직시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무지와 부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아무 기반이 없다.
신의 새 메시지는 당신에게 미래를 경고하고, 당신을 축복하고, 당신에게 미래를 직시할 힘을 주고, 미래를 대비해 당신을 준비시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 이 준비는 주로 인간의 인식이나 헌신과 관련이 있다. 이것이 실제로 일상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루려면, 당신의 모든 재능·기량·소질·과학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내적 헌신이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부족하면, 당신의 모든 자원과 자산은 소용이 없고, 근본적으로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신은 필요한 것,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을 제공한다. 그것은 반드시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기대하거나 믿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 신의 새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구의 국가들이나 종교들은 협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인류가 실패하면, 어떤 승자도 없을 것이다. 다른 국가가 실패하면, 어떤 국가도 최고가 되지 못할 것이다. 지구는 점점 더 위태로워질 것이고, 지구에 개입하는 이들의 설득은 알아채지 못하는 이들과 무지한 이들에게 더욱더 매력적이 될 것이다.
우주에서 온 이 특정 종족들은 바로 인류의 약점과 갈등, 무지와 미신을 노릴 것이다. 그들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지구를 장악할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생각과 인식을 조종하는 데 능숙하다. 그것이 그들의 강점이며, 바로 현재 그들이 사용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사용할 것이다.
원주민에게 개입한 것과 관련하여 지구의 역사가 당신에게 반복해서 가르쳐준 것을 보라. 이것이 운명이었다거나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것은 많은 결정의 결과, 특히 원주민들이 스스로 내린 많은 잘못된 결정의 결과였다.
인류에게는 지금의 개입과 앞으로의 개입을 상쇄할 힘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인류는 큰 공동체 앎과 지혜를 배워야 하며, 오직 모든 생명의 창조주만이 큰 공동체 앎과 지혜를 제공할 수 있다.
인류는 국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인류는 자신이 우주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곳에 오는 누구든 인류에게 매우 관심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히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이고, 혼자만의 우쭐한 생각이며, 자화자찬이다.
인류가 마주하게 될 큰 공동체는 매우 경쟁적인 환경이어서 심약한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환경이다. 여기서 당신이 기량과 지혜를 얻으려면, 인간의 야심이나 인간의 상상력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류는 큰 공동체에 준비되지 않았다. 인류는 쇠퇴하는 세상에 준비되지 않았다. 그래서 신의 새 메시지가 있다. 그래서 신이 길을 제공하며, 그 길은 인류가 창안한 것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창안한 것에 큰 가능성, 큰 힘, 큰 효용성을 주려는 것이다.
신은 큰 기회를 만들기 위해 기존에 있는 것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전에 한 번도 계시된 적이 없던 것들이 당신에게 계시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당신은 맑은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자신의 곤경을 인지해야 하며,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않던 것들을 기꺼이 보려고 하고 알려고 해야 한다.
무지는 어떤 것이 나타나 무지를 바꾸고, 무지의 환상과 허상을 깨뜨릴 때까지는 저절로 계속 돌아간다. 그것은 비극이니, 삶이 당신에게 이렇게 하도록 기다리지 말라. 그리하기보다는 당신이 준비할 시간을 벌고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무엇이 다가오는지 계시가 당신에게 보여주게 하라.
인류를 위한 새로운 길이 있다. 하지만 그 길은 큰 지혜, 큰 앎, 큰 도전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이것을 인지하면, 당신은 이 새 계시의 완전한 관련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큰 앎과 큰 지혜의 필요성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닥치는 큰 도전을 보지 못한다면, 당신은 새 계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새 계시가 단순히 당신 개인의 자기 계발을 위해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저 또 다른 관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다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모든 생명의 창조주는 인류가 쇠퇴하는 지구를 복구하여 자급자족을 유지하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인간의 자유와 독립을 확보하기를 바란다. 모든 생명의 창조주는 인류가 독립적인 자유 종족으로서 지적 생명체로 이루어진 우주 큰 공동체에 출현하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인류가 자립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 또 이 거대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녀야 하는 앎과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신이 바라는 것은 인간의 인식, 인간의 관계, 인간의 이해, 인간의 행동을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신은 당신이 오늘보다 더 행복하고, 오늘보다 더 성공하고, 오늘보다 더 자비롭고, 한 개인으로서 오늘보다 더 효과적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신이 바라는 것은 반드시 인간의 경험으로 옮겨져야 한다.
이 이해는 당신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줄 것이고, 이것은 거짓된 희망이나 자신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인류에게 바라는 것이 당신에게 드러날 것이다. 만약 이것을 볼 수 있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인류에게 큰 가능성과 운명이 있음을 알 것이다.
하지만 이 가능성과 운명을 찾아 성취하려면, 당신은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야 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개인적 삶부터 시작하여 당신의 관계나 사회 활동을 통해, 또 가정·가족·마을·도시·국가 및 전 세계에서 당신이 보고, 알고, 옹호하는 것들을 통해 외연으로 확장하면서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당신 내면에 있는 앎은 당신이 자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신이 당신 내면에 심어 놓은 지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맞닥뜨리는 삶의 거대한 파노라마와 인간 가족에게 다가오는 변화의 큰 물결을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은 이 앎의 필요성을 결코 보지도 못할 것이고, 앎을 요청하지도, 정중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할 것이다.
이 거대한 파노라마와 변화의 큰 물결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이 축복받았으며, 인류를 사랑하는 모든 생명의 창조주가 이제 당신이 태곳적 운명을 이곳에서 이룰 수 있도록 새로운 시작과 큰 기회를 인류에게 제공했음을 알 것이다.
이것을 당신의 이해로 삼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