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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hall Vian Summers
on 10월 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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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인류가 지금 직면해 있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다. 이 사건들은 인류 전체가 지금까지 겪은 어떤 것보다 더 크다.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에 직면해 있으며, 이 큰 물결은 환경 파괴와 지구 자원의 오용, 험악한 날씨, 환경 악화, 에너지·식량·수자원의 감소로 인해 야기된다. 이 거대한 환경 변화는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그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이 세상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자원 감소는 이제 막 지구에서 제대로 기록되고 입증되기 시작했지만, 그 영향은 크고 광범위할 것이며, 그야말로 세상의 지형을 바꿔 놓아 21세기는 20세기와는 매우 다를 것이다.

인간 가족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큰 도전과 변화는 주변 우주인 큰 공동체에서 온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이다. 지금 세상의 극소수 사람만이 접촉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으며, 그 소수의 사람 중 대다수도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접촉에는 미래에 인류의 자유를 앗아갈 힘이 있으며, 인류 문명을 외세의 통제와 지배 아래 놓이게 할 힘이 있다.

이것은 누군가가 와서 폭력적으로 당신을 급습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정복이 아니다. 지구와 지구인에 대한 통제권을 얻으려고 하는 이들은 수가 적고, 군사 자산도 없다. 그것은 그들의 강점이 아니다. 그들은 교활하고, 똑똑하다. 그리고 비군사적 수단을 통해 지구의 통제권을 얻을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다가오는 변화의 큰 물결을 알아차리는 사람, 또 실제로 변화의 큰 물결이 의미하는 것과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과 결과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지금 세상에 거의 없다. 그리고 외계에서 온 개입이 일어나고 있으며, 여기에서 개입은 권력, 영향력, 미래 통제권을 얻기 위한 힘의 경쟁임을 깨닫는 사람이 지금 세상에 거의 없다.

이 둘이 합쳐진 것을 당신이 마주할 때, 이것들은 실로 압도적일 것이다. 실제로 이것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지만, 마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며,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 또 자신의 환경과 상황을 재평가하고, 삶 자체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이것들이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지가 있고, 인간의 부정이 있다. 하지만 변화의 큰 물결은 다가오고 있으며, 이미 개입도 일어나고 있다. 이것들은 당신이 바꿀 수 없는 두 가지 큰 현실이지만, 그 결과는 대체로 인간과 인간 공동체가 하기 나름이다.

첫 번째 큰 도전은 당신 삶에 다가오는 큰 도전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비록 이 도전들이 당신의 마음, 즉 생각하는 마음에는 압도적이고 두려운 것으로 보일지라도, 당신 내면에 신이 심어 놓은 깊은 앎은 이 도전에 대비해 잘 준비되어 있다. 사실 큰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바로 당신이 세상에 온 이유이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매우 큰 도전에 직면해서 당신은 인류에게 봉사하고 어려움에 처한 세상에 공헌하려고 세상에 왔다.

당신은 이것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 더 큰 관점을 지녀야 하며, 자신을 더 깊이 인식하고, 큰 목적이 있어 세상에 왔다는 것을 더 깊이 인지해야 한다. 당신은 단순히 생존하거나, 소비하거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인류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 현재의 이해에서 이 더 큰 이해로 나아가는 것이 당신의 영적 성장과 자각이 필요한 이유이자 그 목적이다.

죽음과 상실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이 갖는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높은 목적이 있어 세상에 왔다는 이 큰 이해로 이동하는 것은 큰 전환이다. 당신이 앞에 놓인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고 이곳 지구에서 당신 사명을 성취할 수 있으려면, 이 전환을 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당신 목적은 당신이 세상에 오기 전에 정해졌지만, 그 목적이 어떻게 표현될지는 매우 많은 것, 매우 많은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물론 당신 자신의 결정이 이것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 또한 시기나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심지어 당신이 이곳에서의 당신 운명을 성취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신이 만나야 할 특정인들이 있다. 그들은 당신 삶의 퍼즐을 맞추는 데 필요한 조각의 일부를 지니고 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들이 당신 삶에 도착하고 참여함으로써 당신은 이 큰 전환을 할 수 있고, 급변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공헌자가 되는 데 필요한 힘, 격려, 동료애를 얻을 것이다.

이때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걱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인식과 반응이 없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용기를 잃어서도 안 된다. 당신에게는 자신이 해야 하는 여행이 있고, 자신이 응답해야 하는 부름이 있으며, 자기 삶 속에서 자신의 자각으로 자신이 겪어야 하는 전환이 있다.

신은 당신이 세상에 오기 전에 당신이 무엇에 직면하게 될지 알았다. 심지어 지금도 신은 세상의 수평선 너머로 무엇이 다가오는지를 안다. 그리고 당신을 도울 신의 지혜가 없다면, 또 당신이 세상과 미래는 물론 인류의 자유에 진정으로 공헌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의 큰 물결과 큰 공동체에 대비할 수 있는 용기와 헌신을 당신에게 주는 신의 힘이 없다면, 당신은 도저히 이 모든 것을 인지할 수도 없고, 적절히 대비할 수도 없다는 것을 신은 안다.

신은 당신의 이성만으로는 이 거대한 삶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신은 다른 사람들의 영향과 사회적 환경이 당신에게 너무 강하게 미쳐 당신이 이 삶의 흐름들을 명확하게 보고 적절히 대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신은 당신에게 신의 지혜와 지성과 힘에 속하는 일부를 주었다. 그래서 당신은 마음 아래에 있는 마음인 깊은 마음, 당신 내면에 신이 심어 놓은 마음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것이 바로 진짜 본연의 당신, 신이 당신에게 준 앎이라는 큰 마음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이곳에 오기 전에 지녔던 마음이고, 이곳을 떠난 후에도 당신이 지닐 마음이다. 이 마음은 지금도 당신 내면에 살아 있다. 그리고 당신 내면에 있으면서 당신을 안내하고 보호하며, 당신이 자기 삶에서 필요한 교정을 하도록 당신을 돕고, 세상을 위한 기반과 자신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며, 인류가 과거보다 더 큰 미래를 지닐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이 기반을 구축하는 데 거들고 돕는다.

이 앎이 없다면, 당신은 주변의 정신 환경에서 오는 영향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사회적 조건화와 종교적 편견과 개인적 태도를 충분히 극복하여, 더 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며, 세상에서의 큰 봉사, 즉 당신이 이곳에 파견되어 수행해야 할 봉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신이 당신에게 앎을 주었다. 앎은 당신이 조종할 수 있는 지성이 아니다. 그리고 통제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당신의 이성보다 훨씬 더 지성적이다. 앎은 두려움도, 혼란도, 적대감도 없다. 앎은 비교하거나 대조하거나 추측할 필요가 없고, 지배하거나 통제할 필요도 없으며, 당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쓰러뜨릴 필요도 없다.

사실 앎은 이성이 지닌 특질 대부분을 실연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당신의 이성은 세상의 산물이며, 앎은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성은 세상을 반영하고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반영하지만, 앎은 신의 마음과 당신의 신성을 반영한다. 하나는 일시적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하다.

궁극적으로 당신 존재의 진정한 위계질서에 따르면, 당신의 이성은 앎을 섬기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과 큰 힘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앎이 자신의 이성을 섬기기를 원한다. 그들은 앎이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기를 원하고, 자신의 불안을 덜어주기를 원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기를 원한다. 그들은 마치 앎이 이성의 종인 것처럼, 앎이 그들에게 봉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앎은 이성의 종이 아니다.

그러나 앎은 당신에게 봉사하고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앎은 변화의 큰 물결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큰 공동체의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앎은 그것들을 기다리며, 그것들에 대비해 준비되어 있다.

앎은 당신의 개인적 마음인 이성과는 정말 다르다. 개인적 마음은 세상을 두려워하고, 상실과 궁핍을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개인적 마음은 당신에게 어떤 실질적인 안전보장을 제공할 만큼 당신 주변의 일을 결코 충분히 통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성과 앎의 차이는 너무 커서 실제로 당신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신이 앎 자체를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는 당신에게 앎은 신비롭게 보일 것이다.

앎에 대한 당신의 초기 경험은 긴박감이나 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며, 어떤 것을 그만두어야 하거나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아차리는 순간, 자비심과 이타심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앎의 징표이며, 앎은 여전히 당신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앎이 당신의 의식에서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당신은 앎의 힘과 효능을 실제로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에게 앎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신의 관계나 업무, 개인적 일들, 이성적 이해에서 확립하려고 한 모든 확실성과 안전보장은 오직 앎만이 제공할 수 있다.

앎이 없다면, 당신은 극적으로 변하는 세상, 아름답지만 위험하기도 한 세상에서 표류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바랄 수 있는 것은 오직 적응하고 가능한 한 좋은 마음가짐으로 생존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최대한 용기를 가지고 안정을 유지하며 단지 몇 년 동안 생존하는 것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당신의 운명이 아니다. 그 때문에 당신이 이곳에 파견된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참된 본성을 안다면, 이것은 대낮처럼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앎이 아직 충분히 당신 마음속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당신은 이것을 알 수 없으며, 앎이 당신에게 제공할 안정과 안전보장과 힘을 지닐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앎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이다. 즉, 당신이 이곳에 와서 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함을 인지하는 것이며, 자신을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게 하고 빈곤 상태에 계속 머물게 하는 욕망과 부정의 그물에 휘말린 채, 온갖 끝없는 탐색과 무의미한 추구로 시간과 세월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앎의 필요성을 느껴야 하고, 동시에 과거에 짧게나마 앎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고, 또 당신에게 이 확실성이 필요하다는 것과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위해 이 큰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이며, 큰 공동체와 개입 앞에서도, 비록 이것을 알아차리고 마주할 용기가 있다고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두 가지 큰 사건 앞에서 절망과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당신 내면에 있는 앎은 절망하지 않으며, 무력하지도 않다. 앎은 당신 삶을 재설정하기 시작할 것이고, 필요한 곳에 힘을 길러주기 시작할 것이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큰 일과 심지어 당신 내면에서도 일어나는 삶의 큰 흐름에 대한 당신 인식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앎의 필요성을 인지해야 하고, 그런 다음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신이 세상에 보낸 새 메시지, 인류를 위한 새 메시지는 앎으로 가는 계단을 제공한다. 밟을 수 있는 다른 길도 있지만, 이것만큼 명확한 길은 없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신의 선물이다. 인간이 창안한 것도, 누군가가 만들어낸 과정도, 절충적인 접근 방식도 아니며, 새롭고 강력하고 독창적인 어떤 것이다. 그리고 아무 변질도 없이 이곳에 왔다. 이것은 변경되거나 조작되지도 않았으며, 종교 기관이나 정부에 의해 이용되지도 않았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순수하다.

당신은 이제 이 계단들을 밟아야 한다. 당신 삶은 중요하지만, 당신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시간이 관건이다. 당신이 미래를 대비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또 미래의 생존 가능성과 마음의 자유를 결정하는 데 하루하루가 중요하다. 그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다. 생각만 하는 시간은 낭비이며, 시간이 관건이다.

인류는 너무 늦게 변화의 큰 물결을 인지하고, 큰 공동체에서 온 종족들의 개입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인간 가족 전체와 인류 문명은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확실성, 목적, 의미, 방향에 대한 큰 필요성은 단지 개인적으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인류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물론 당신 혼자서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다가오는 큰 변화를 마주하기 위해, 또 큰 공동체에 직면하여 이 지구 안에서 인류의 자유와 주권을 보존하도록 통합하기 위해, 명확성과 힘과 의지를 가질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데 당신은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운명 지어졌다. 인류의 자유와 주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도전받고 있다.

당신은 여기에서 역할을 맡기로만 되어 있지, 그 역할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역할을 알 수 없다. 당신은 아직 산을 그다지 높이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그곳에 데려갈 준비의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이 산을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한 걸음씩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다. 다른 아무것도 세상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전망점으로 당신을 들어 올려주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이 여행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그리고 당신은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앎의 힘을 얻으려면, 당신은 힘·헌신·자신감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당신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당신에게 그냥 일어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설사 천사들이 당신에게 나타나서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는 이것을 할 힘이 없다. 당신에게는 이것을 할 수 있는 신뢰가 없다. 당신 삶은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당신은 자신의 상황을 바꿔야 할 것이며, 자신의 헌신과 의무를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할 것이다. 다른 방도가 없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있는 곳에서는 큰 삶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당신에게는 자신을 보호하고 안내할 앎의 힘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앎의 힘을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직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당신에게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수십 년 있는 것이 아니며, 이처럼 절실히 필요한 것과 도전 앞에서 양가적인 상태로 한없이 있을 시간이 없다.

당신은 불편하므로 내면에서는 이것을 안다. 당신은 해야 하지만 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불안하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지만 그만두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당신은 불안하다. 혼의 수준에서는 세상에서 살면서 사명을 완수하는 것만 있으므로 당신 혼은 불안하다. 당신 마음은 즐거움, 편안함, 확신, 기회 등 원하는 것들이 끝없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 혼에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사명을 완수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앎이 하는 일은 혼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당신 내면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속 채워지지 않으면, 당신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화가 나고, 불편하고, 동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가장 핵심에서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 인지되지도, 채워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혼에 필요한 것이 인지되지도 채워지지도 않는다면, 당신이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당신 삶이 어떻게 안정될 수 있겠는가? 이 필요한 것이 인지되지도, 채워지지도 않는다면, 당신 생각이 어떻게 논리정연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사회적 조건화, 두려움, 욕망, 종교적 편견의 노예이다. 그들은 심지어 혼자서는 생각할 수도 없다.

앎은 구원이다. 왜냐하면 오직 앎에만 이 모든 것에서 당신을 해방할 힘, 세상을 살아가는 결과로써 생기는 불가피한 속박에서 해방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인류를 위한 신의 새 계시는 앎으로 가는 계단을 제공한다. 앎으로 가는 계단이 앎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변화의 큰 물결과 큰 공동체 현실을 대비해 당신을 준비시키고, 지적 생명체로 이루어진 큰 공동체 안에서 인류의 미래를 대비해 인류를 준비시키기 위해 신이 제공한 길이다.

바로 여기서 당신의 내적 삶과 외적 삶이 진정으로 연결된다. 혼에 필요한 것과 세상의 사건들은 단절되지 않는다. 사실 당신의 큰 목적을 당신에게서 불러낼 것은 바로 세상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무엇에 봉사하고 공헌해야 하는지를 인지할 때, 이곳에서 해야 하는 큰 일이 훨씬 더 명확해지고 분명해지며 일관될 것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큰 일을 찾은 사람은 매우 극소수이다. 그러므로 예술가, 시인, 음악가가 되거나 다른 멋진 활동을 하는 것으로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충족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일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당신의 큰 목적은 다른 어떤 것이다. 당신은 큰 목적을 규정할 수 없다. 큰 목적은 웅장하지도 영광스럽지도 않다. 당신은 대중을 구원으로 이끄는 어떤 영웅이나 성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공상 소설의 소재이다. 나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앎은 당신 내면에 있는 큰 힘이다. 앎은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주의를 끌려고 한다. 당신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그래서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므로 앎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 즉 당신이 앎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고요를 기르는 것, 앎을 향해 당신 마음과 집중의 방향을 돌리는 것, 세상을 살면서 분별력과 신중함을 기르는 것,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삼가는 것, 다른 사람들의 앎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저 당신을 자극하기만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당신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 등 이러한 것들은 단지 앎이 당신에게 제공할 큰 성취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가 앞서 말했듯이, 앎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고, 신의 창조물이다. 바로 이 앎을 통해서 신은 당신을 도울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안전하게 해주고 이익을 주고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할지도 모르지만, 신은 바로 이 앎을 통해서 실제로 당신을 도울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삶이나 상황과 관련해서 신의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해야 하고 되어야 하는 것과 관련해서, 또 세상에서 큰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인사에서 일어나야 할 변화와 관련해서, 당신에게는 신의 지혜가 필요하다.

신은 이런 식으로 당신을 도울 것이다. 온 우주의 신은 인간사에 몰두하지 않는다. 신은 당신의 종잡을 수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시녀처럼, 하인처럼, 심부름꾼처럼 당신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신은 당신 내면에 지혜를 심어 놓았으며, 그리하여 당신을 안내하고 보호하며, 또 삶에서 큰 역할을 맡고 인류에게 큰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당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당신에게 준다.

사람들은 종종 “음, 이것은 직관을 말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직관으로는 앎이라는 것과 앎이 당신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을 아우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직관은 내적 확실성을 순간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고 때로는 어떤 일을 예지하지만, 앎은 훨씬 더 크다. 당신은 이 둘을 적절히 비교할 수 없다. 어쩌면 직관은 앎을 초기에 순간적으로 경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앎이 당신 삶에서 의미하는 바는 훨씬 더 크다. 앎은 현존이고, 힘이며, 인식이고, 역량이다. 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차원의 사랑이다. 앎은 인간의 규정을 뛰어넘는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이성으로 앎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앎은 항상 당신 이해의 범위를 넘어설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앎을 구체적이고 단순하게 만들려고 하면, 앎은 당신의 경험에서 벗어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앎을 붙잡아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면, 앎은 당신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이다.

당신은 앎을 섬기기로 되어 있으며, 앎은 본연의 당신이고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아직 이런 인식이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대비해야 하고, 변화의 큰 물결을 대비해야 하며, 큰 공동체에서 온 개입자를 상대하기 위해 대비해야 하고, 당신을 돕고 지원하기로 운명 지어진 사람들을 찾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당신은 앞으로 훨씬 더 위험해질 세상에서 오직 안전하기 위해서라도 앎이 필요하다. 당신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힘과 목적을 지니고 살기 위해 확실성을 가지려면 앎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변화의 큰 물결에 압도될 때, 당신 주변에서 커지는 갈등과 불안을 극복하려면 앎이 필요하다.

정말이지,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당신에게 밝혀져야 한다. 당신의 생각으로는 이것을 알아낼 수 없다. 당신 삶은 신비롭다. 그렇지 않은가?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통제하고 결정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마음 아래, 즉 그 표면 수준의 인식과 지성 아래, 당신 삶의 큰 신비가 있다. 당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고, 이승을 떠나 어디로 갈 것인지 등 큰 신비가 있다. 이것이 바로 앎의 영역이다.

이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시간을 절약하고 어리석은 시도를 줄이라. 이것은 당신이 직접 경험해야 하는 것이며, 이미 조금씩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관계·일·활동에서 목적과 의미를 찾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혼에 필요한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당신은 작은 것들로 만족하지 못한다. 당신에게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하고, 더 큰 것들이 필요하며,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변화의 큰 물결에 직면하여 세상이 더욱 어려워질수록, 당신에게는 힘과 확실성과 용기가 필요하며, 이 모든 것은 혼에 필요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저 심리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혼에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계시인지 깨달으라. 신은 당신에게 앎의 힘을 주었으며, 이 힘은 당신이 스스로 찾을 수 없는 당신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당신에게 제공했다. 그리하여 앎이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당신 내면에서 드러날 수 있게 하며, 또 힘을 길러 앎의 매개체가 되고 당신 삶에서 앎의 기반을 구축하고 당신 내면에 있는 앎의 출현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할 수 있게 한다.

어쩌면 당신이 필요성과 문제는 알아차리기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해결책은 당신에게 드러나야 한다. 당신은 신이 마지막 순간에 와서 변화의 큰 물결이나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개입에서 인류를 구하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신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앎을 심어 놓았다. 심지어 이들 중 작은 수라도 앎의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인류의 진로를 바꾸고 인류를 부양할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 숫자에 포함되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당신은 보지도 않을 것이고 볼 수도 없는 사람, 알지도 못할 것이고 알 수도 없는 사람과 지나치게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자신이 경험하고 대비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이제 당신을 위한 부름이다. 그것은 이제 당신을 위한 다음 단계이다. 당신이 누구이고,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답이 당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변화의 큰 물결이나 개입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답이 당신에게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만약 이렇게 할 수 있는 겸손함이 있다면, 당신은 신이 당신을 위해 의도한 것을 받아들이는 위치에 서기 시작할 수 있다.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기 시작하고, 앎이 당신 내면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당신 마음과 삶을 준비하기 시작하라. 그러면 앎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일단 당신이 앎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앎을 염원하는 소망과 앎을 받아들이는 역량을 갖추면, 앎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앎은 항상 당신 내면에서 드러나려고 했지만, 당신 마음은 다른 곳에 있고, 당신의 관심사도 다른 곳에 있으며, 당신 에너지도 다른 곳에 쓰이고 있다. 당신은 정신이 팔려 있고, 자기 집착에 빠져 있으며, 사회적 조건화에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당신은 앎이 매일 보내는 모든 메시지를 놓친다. 당신은 단서를 듣지 못하고, 신호를 보지 못하며, 대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외면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내면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이 큰 전환을 하기 시작하려면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하고,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일은 하룻밤이나 한두 달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여행이므로 시간이 걸린다.

당신은 이 산을 뛰어오를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이것은 큰 산이고, 당신은 여행을 해야 한다. 여행을 하면서, 불필요하거나, 당신을 짓누르거나, 지니고 다니기에 너무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당신이 나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여행에 합류한다. 당신은 자신이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은 여전히 숲에 둘러싸인 산 아래쪽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없고, 자신이 가는 곳을 볼 수 없으며, 자신의 목표를 볼 수 없다.

당신은 믿음에 따라 행동하며, 진정한 믿음은 당신을 격려하는 앎의 힘에 기반을 둔다. 진정한 믿음은 당신이 나아가야 한다는 확신이고, 지속되어야 한다는 확신이다. 당장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그것을 왜 하는지 모를 것이며, 정신 나간 일처럼 보이겠지만, 전적으로 당신에게 맞는 일이다.

이것이 그 여행이다. 바로 여기에서 당신은 앎을 받아들이는 내적 역량을 키운다. 바로 여기에서 당신은 자신에게 필요한 지혜를 얻어 앎을 지니고 다닐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주도록 앎이 당신에게 준 것을 표현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당신은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고, 큰 힘과 큰 능력을 얻는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런 다음 준비의 여행을 떠난다. 바로 이 준비의 여행을 통해, 차츰 당신 삶이 바뀌고, 당신이 새로워지고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당신이 경험하는 것보다 당신 삶이 더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위대함이 지금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당신이 이곳에 온 운명, 어쩌면 한두 번 경험했거나 전혀 경험하지 못한 운명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 여행을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어떤 것들을 보고, 느끼고, 알기 시작한다. 당신은 이전에 결코 보지 못한 어떤 것들을 인지하기 시작하지만, 그것들은 항상 있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 내면에 있는, 혼에 필요한 것을 듣기 시작한다. 그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곧장 비난하기보다는 그들 내면에 있는, 혼에 필요한 것을 듣기 시작한다.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을 부정하거나 변화의 큰 물결에서 도망치기보다는 마주할 용기와 필요성을 지니기 시작한다. 당신은 인류가 우주의 문턱에 서 있으며, 우주에서, 심지어 지구에서도 인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 산을 오르며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을 때, 당신은 개인적 계시를 받기 시작한다. 당신 마음이 희망 없는 추구와 해로운 관계에 덜 사로잡힐수록, 당신에게 엄청난 에너지가 생긴다. 그리고 이렇게 해방된 에너지로, 당신은 힘을 되찾고, 평정을 되찾으며, 능력과 자신감을 되찾는다. 그리고 이 여행을 할 힘을 얻는다. 처음에는 당신에게 그 힘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힘을 경험한다.

이 산을 오르며 내딛는 걸음마다 당신은 큰 명확성과 큰 확실성을 얻을 것이며, 자신을 지배하는 나약함을 깨뜨릴 것이다. 당신은 내적으로 더 강해지고, 더욱 확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내면에 있는 신비의 힘을 인지할 것이다. 이 힘은 이제 당신에게 영양분을 주고, 당신을 격려하며, 당신에게 힘과 끈기, 자신감과 인내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강해지면서 동시에 겸손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큰 힘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자신을 세상으로 오게 한 큰 목적에 봉사하는 법을 당신이 배울 때, 큰 힘이 당신에게 영양분을 주고, 당신을 돕는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