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서 계시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1993년 10월 23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에게
계시되다

이 본문에 관하여


What you are reading in this text is the transcription of the original voice of the Angelic Assembly as it spoke through the Messenger Marshall Vian Summers.

Here, the original communication of God, which exists beyond words, is translated into human language and understanding by the Angelic Assembly who watch over the world. The Assembly then delivers God’s Message through the Messenger, whereafter it is transcribed and made available to you and to all people.

In this remarkable process, the Voice of Revelation is speaking anew. The Word and the Sound are in the world. May you be the recipient of this gift of Revelation and may you be open to receive its unique Message for you and for your life.



독자에게 알림
이 번역은 영어 원문 번역을 자원한 새 메시지 학생이 협회에 제공하였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새 메시지 일부와 만날 기회를 갖도록 이 같은 초기 형태로 이 번역물을 세상에 내놓는다.

계시는 다른 이들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특정인들이 받는 선물이다. 계시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며, 매우 특별한 상황에서만 일어난다. 계시는 이 특정인들을 입문시키고, 그들의 앎을 확인해 주도록 되어 있으며, 대단히 중요한 시기에 일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높은 목적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그들의 큰 기회를 완전히 잃는다. 계시는 지금 일어나야 하는 어떤 일을 개시하기 위한 극단적 활동이다.

이런 표출은 극히 드물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런 표출은 여기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는 매우 두려울 수 있다. 그리고 틀림없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현실을 이제 동시에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받는 사람은 여기에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계시를 정중히 받아야 하며,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그 지혜를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것은 오인하고 오해할 충격적인 사건일 것이다.

세상 밖에 서서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만약 당신 현실이 세상에서 얼마나 쉽게 망가지고, 엉망이 되고 도전을 받으며, 그 기반이 얼마나 약한지를 당신이 볼 수 있다면, 또 그 현실이 전혀 의심한 적이 없는 어떤 가정 위에 구축되었고,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과거의 기준을 이용하여 강화되었다는 것을 당신이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불가시 존재들이 여기서 전도유망한 학생들과 얼마나 정교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이런 계시는 입문하게 하는 것이다. 계시를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요구하고 기대하는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원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체험이나 목표나 사람에 대한 책임이 무엇을 요구할지 거의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입증을 원하므로, 계시를 원한다. 그들은 자신의 영적 성향이 진실하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 마음에 확신시켜주고 싶지만, 이것은 결코 개인 마음에 입증될 수 없다. 개인 마음은 당신의 영적 성향이 없을 때 확립되며, 영적 성향에 마침내 항복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여러 면에서 영적 성향과 대립할 것이다. 당신의 영적 성향이 진실한지는 당신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 이해이자 세상에서의 일시적 체험인 개인 마음이 어떻게 시작도 끝도 없는 큰 현실을 확인하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앎길에서 수년간 헌신적으로 배움으로써 일어나는 더 크고 완전한 계시가 있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계시이며, 갑작스럽거나 극적이지 않다. 또한, 당신의 삶에 불쑥 들어오지 않으며, 당신을 간섭하지 않는다. 이 계시는, 물질적 삶과 그 너머에 있는 삶 사이의 장막이 점점 얇아지면서, 또 당신이 점점 더 소통을 체험하고, 당신 마음속으로 통찰과 정보가 전달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 점차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당신은 지성이 있는 존재인 현존이 저세상에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느낄 것이다. 사실 당신은 자신을 돕고 격려하는 훌륭한 그룹이 있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약해지다 결국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영적 가족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을 위해 거기 있고, 당신은 그들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의 눈은 이러한 것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당신 귀도 이러한 것을 듣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 내면의 눈은 볼 수 있고, 당신 내면의 귀는 들을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것을 느낄 수 있고,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 마음속으로 메시지가 올 것이며, 당신은 그 메시지가 당신의 생각이나 상상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이것은 매우 미묘한 계시이지만, 이것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이 메시지는 세상에서 큰 목적을 수행하면서 많은 준비를 하고 진보함으로써 온다. 초보 학생들에게는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희망이자 이상일지도 모르지만, 이 경험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물 것이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당신 삶의 주안점은 먼저 앎과 공헌에 있어야 한다. 당신이 이곳에 확실히 자리잡기 전까지는, 당신 자신이 완전히 결정할 수 없는 것인 당신 영적 가족의 현존은 드러나지 않은 채로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이곳에서 당신 일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을 나약하게 하거나, 세상에 있는 것에서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을 것이다. 영적 가족에 대한 경험은 가혹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살아남고, 공헌하고, 진실하고자 노력하는 경험보다 훨씬 더 멋지다.

어쩌면 당신은 세상을 쉽고 멋진 곳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당신 고향에 비하면 황량하고 힘든 곳으로 보일 것이다. 영적 가족과의 접촉은 고향에 대한 당신 기억을 되살릴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극심한 향수병에 걸릴 것이고, 당신의 관심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서 멀어질 것이다. 만약 이것을 너무 빨리 경험하면, 당신이 세상에 참여자가 되어 직면해야 할 도전들을 직시하려는 열망과 의도를 갖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천국이 너무 일찍 올 수 있다. 당신은 천국을 기원할 수도 있고, 원할 수도 있으며, 애원할 수도 있지만, 천국이 너무 일찍 오면, 당신의 주의를 산만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계시가 매우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더 좋다. 이처럼 계시가 드러날 때 당신은 현존을 느끼고, 소통과 도움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 이때 당신은 세상에 집중하면서도, 당신의 영적 가족이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 운명이 보장된다는 더 큰 확신을 유지할 수 있다.

계시는 당신의 영적 가족과 불가시 존재들의 결정에 달려 있으며, 불가시 존재들은 당신의 영적 가족을 인도하고 대표하는 이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계시를 여러 해 동안 계속해서 바라며, 다급하게 원하지만, 그들에게는 계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계시를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음에도, 그들에게는 계시가 일어난다. 왜 그러는가? 그것은 개인의 준비와 목적과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앎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확인해 주기 위해 이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경험이 큰 방해가 될 것이다. 이런 경험은 그들을 겁먹게 하거나, 갈피를 못 잡게 하거나,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당신의 깊은 성향이 인지되고 존중받을 때까지, 또한 당신의 깊은 성향이 삶에서 겪는 크고 놀라운 사건으로 취급되기보다는 주된 경험과 주안점이 될 때까지, 계시는 당신에게 맞지 않으며,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계시는 목적과 준비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성이 분명히 그들 삶 저변을 흐르는 매우 미묘한 것으로, 그들이 인정하는 어떤 것이지만, 그 자체가 중심 주제나 초점은 아니다. 강렬한 영적 체험은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으며, 실제로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하는 자신의 봉사가 인간 삶과 신 사이의 가교 역할에 더 가깝도록 된 사람들은 이러한 영적 체험의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영적 체험은 요청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큰 공동체 앎길에서 진보할 수 있다면, 점진적인 계시를 기대하라. 눈이 더 맑아지고, 마음이 더 자유로워지고, 앎의 체험이 더 깊어짐에 따라, 당신은 하늘과 가족 관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이 가족 관계는 관념적이지 않을 것이고, 철학적이지 않을 것이며, 신학적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열망이나 소망이 아닐 것이다. 이 가족 관계는 단순히 거기에 있는 어떤 것일 뿐이다. 당신은 이 관계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관계는 당신과 가까이 있으므로, 그냥 거기 있을 것이다. 이 관계는 억지로 밀고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당신에게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보다는 조용하면서도 깊이 당신과 함께 머물 것이다. 그리고 그 현존은 깊이 스며 있을 것이다.

계시는 특정인들에게 특정 시기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참여해야 하고, 중대한 다음 단계를 밟아야 한다. 다른 이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그들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하늘의 지혜가 이것을 결정한다. 당신 스스로는 결정할 수 없으니, 계시를 받으려고 애쓰지 말라. 계시를 당신의 계획과 목표의 일부로 설정하지 말라. 그러기보다는 앎의 학생이 되어, 자신을 위한 거창한 계획이나 설계, 능력을 주장하는 일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나아가기 시작하라. 그러면 당신은 하늘이 당신에게 준 것에 더 가까워지므로, 하늘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앎과 당신의 관계가 더 깊어질수록, 신과 당신의 관계도 더 깊어진다. 관계는 이미지나 환상적인 표현물이 아니라, 영속하는 현존이다.

당신은 영적 가족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은 체험할 수 있지만, 당신이 영적 가족과 가까워져야 한다. 당신 내면에 있는 앎에 더 가까워질수록, 당신은 영적 가족에 가까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앎과 영적 가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목적의식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기원에 대한 기억도 또렷해질 것이다. 그 기억은 이미지나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관계 자체의 체험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목적에 대한 체험이 커질수록, 운명에 대한 체험도 커질 것이다.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세상에 일시적으로만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할수록, 세상의 겉모습과 비극에 위협받는 일이 더 적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이 계시를 체험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환상적인 정보를 주었다고 말하며, 온갖 극적인 사건들이 그들 체험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대단히 회의적으로 보라. 그것은 다른 차원에 있는 이들과 접촉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세계에 있는 이들과 접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대화 상대가 누구인지, 그들의 의도나 동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이 세계에 있는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앎의 학생들은 이런 것들에 집적대지 않는다. 그래서 앎의 학생들은 앎에 가까이 있고, 삶에 가까이 있으면서, 놀라운 체험을 해보려고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앎의 학생들은 논쟁에 휘말리지도 않고, 또 자신의 대단한 경험이나 최근의 통찰에 대해, 혹은 천사나 다른 어떤 신적 존재가 그들에게 전한 것에 대해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매혹적이고 흥미로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디로도 이끌지 못하며, 실제로 마음을 엉뚱한 곳에 쓰게 하는 위험한 것일 수 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 삶에 절실히 필요한 것들과 삶의 도전에 대처하고 직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영적 체험에 대해 묘사하거나 논하는 것을 많이 들을 것이다. 신중하라. 이런 이야기에 가담하지 말라. 이런 것은 대체로 무의미하다. 이런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 법을 배웠으며, 드문 상황에서만 특정인에게 말한다. 심지어 이 경우에도, 그 사람이 진짜 체험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이런 체험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당신이 그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이 말하는 것에 매료될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 이득도 없다. 왜냐하면 의심하거나 매혹되는 것은 앎길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체험을 한 사람에게는 말이 필요하지 않으며, 단지 인정만 있을 것이다.

대화하고 추측하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은 앎의 학생들에게 낭비이다.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신을 만나거나, 천사를 체험하거나, 지속되는 환희를 추구하는 것은 앎의 학생이 두어야 할 주안점이 아니다. 당신은 일하고, 베풀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려고 이곳에 왔다. 당신은 꿈을 꾸거나, 환상을 갖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당신은 엄청난 비용과 공을 들여 세상에 파견되었는데, 자신이 세상에 있고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여기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는 말인가!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어. 여기는 힘들어!”라고 말하지만, 당신의 영적 가족은 당신이 여기 있기를 원한다. 그들은 당신을 여기 데려오려고 많은 공을 들였다. 그들은 당신이 제 역할을 다하는 인간이 되어 삶에서 더 큰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이미 많은 도움을 주었다. 왜 그 일을 안 하고 도망치려고 하는가?

그 일은 당신이 나아가면서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당신은, “글쎄, 어떤 일이 나에게 맞아 보이는지는 내가 결정할 거야.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게 좋아. 그것이 좋겠어. 그것은 너무 어렵거나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재미없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사람들이 스스로 정한 목적과 부름에 대한 많은 추측을 듣겠지만, 이러한 대화는 지혜가 아니므로, 앎의 학생은 이런 대화를 피하는 것이 지혜롭다. 당신의 더 깊은 체험들은 오로지 특정 시기에 특정한 방식으로 특정 사람들에게만 공유될 수 있다. 대부분의 시간은 당신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한다. 심지어 주변 다른 앎의 학생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아야 한다. 신성하고 의미 있는 것을 허비하지 말라. 당신 내면에서 싹트고 있고 자라고 있는 것을 드러내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 삶에서 활력과 힘을 잃을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성에 관한 이 모든 말은 자기 확신을 위한 것이고, 인정받으려는 것이며, 인정받으려는 것 또한 자기 확신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개인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말고, 자기 확신이 어디에 쓰이겠는가? 신성한 것을 일시적이고 나약한 것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 개인 마음이 자제력과 신중함, 분별력, 인내를 배우게 하라. 지혜가 당신 삶에서 현실이 되게 하려면, 이런 것을 배워야 한다. 물론, 당신은 아주 흥미로운 영적 대화를 나눌 만한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많은 자랑이 있을 것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많은 말이 있을 것이며, 많은 비교와 비판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나의 스승은 정말 대단해.”라고 말하면, 저 사람도 “오, 나의 스승은 정말 대단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다섯 개의 종교를 공부했다.”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500권의 책을 읽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는 이 신학에 대해 전부 다 알아.”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오, 그래, 하지만 이 영적 길이 훨씬 더 나아.”라고 말할 것이다. 앎의 학생은 이런 대화를 피하는 것이 현명하며, 이런 대화가 한창일 때는 침묵하고 지켜보는 것이 지혜롭다.

아는 사람은 현존을 지니고 다닌다. 그리고 그들이 무분별하지 않았으므로, 이 현존은 커질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체험을 개인 이득을 얻는 데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기보다는 그 체험이 내면에서 더 강하고 굳건히 자라게 놓아두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현존을 느낀다. 당신은, 뚜렷한 목적 없이 취미 삼아 하는 사람이나 영적 세계에서 관광객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문턱을 직시해야 했던 사람들, 자신의 강을 건너야 했던 사람들, 자신의 의심과 두려움,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된 낭비적인 결과들을 경험하고 직면해야 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한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규정하려 하거나 이용하려 하지 않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침묵은 심오하고 마음을 끈다. 그들은 신비와 함께 있고, 신비는 그들과 함께 있다. 그들을 통해 더 큰 앎, 더 큰 편안함, 더 큰 힘이 드러나서 머물 수 있다. 이것이 영속적인 계시이다. 신비와 함께하는 사람은 대화를 하거나, 토론하거나, 자신을 미화하는 일 없이, 무언으로 신비를 공유할 수 있다. 그들은 신비와 함께 있고, 신비는 그들과 함께 있다.

그래서 이것이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계시의 증거이다. 하늘이 갈라지고 천사의 무리가 내려오는 것은 이야기책이나 신화에 있는 것들이다. 진정한 계시는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 이 계시는 당신이 느낄 수만 있는 어떤 것이며, 당신은 이것을 신비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현존에서 느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선물을 낭비하지 않고, 자라게 놓아두는 이들이며, 고요하고 침묵하고 지켜보는 법을 배운 이들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지금 겪는 모든 새로운 체험과 만남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과거에서 충분히 자유로운 이들이며, 관심을 받거나 인정을 받으려고 자신의 힘을 사용하거나 나약함을 자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앎으로 충분히 강한 이들이다.

계시를 생각할 때, 이것을 생각하라. 낭만에 빠지지 말고 과대망상에 빠지지 말라. 이런 것들은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지만, 헌신하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오직 앎만이 헌신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애착과 야망을 끌어당기지만, 성심성의를 다하도록 누군가를 이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은 앎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앎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 고집대로만 하고, 야심 차고, 교활하고, 약삭빠르고, 기만적이고, 영악하고 계산적인 것이다. 주의하라. 이것은 앎이 없다는 징표이다.

계시는 서서히 커진다. 계시는 앎과 함께 커진다. 왜냐하면 앎과 함께하면, 체험이 오고, 세상이 의심할 수 없는, 기원과 운명에 대한 감이 오기 때문이다. 계시는 느끼고 아는 어떤 것이다. 세부 사항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목적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점점 더 이런 체험을 할 것이다. 당신이 이 특권을 남용하지 않고 앎과 관계를 더 깊이 맺을수록, 당신에게 이 체험은 더 커질 것이다. 당신 마음이 과거를 참조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수록, 당신 내면에는 은총을 채울 공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것이 계시이다. 이것이 한 인간으로서 당신 자신을 파괴하거나 무력화하지 않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또한, 당신이 전달자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큰 현실이 세상에서 그 자체를 표현하고, 또 심지어 가장 단순하고 가장 세속적인 상황에서도 큰 선물을 전하는 일에 그 매개체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신은 무대 뒤에서, 앎을 통해 분리된 자들을 회복하고, 영감받은 개인들을 통해, 의미 있는 관계들을 통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신은 거창한 쇼를 하지 않는다. 신은 사람들이 적개심과 비통함으로, 마지못해, 원망하면서, 엎드려 절하고, 노예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이것은 세상의 힘이 아니고, 세상의 믿음이 아니다. 이것은 개인 마음이 일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다. 또한, 세계 정부들이 일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다. 신은 당신을 위협하지 않는다. 신은 당신을 감질나게 하지 않는다. 신은 당신을 유혹하지 않는다. 신은 당신에게 현존하며, 당신은 신에 현존하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이 주된 관계가 당신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은 당신이 봉사하고 일하러 온 세상으로 당신 눈을 돌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당신 일이 진행되어 더 깊은 체험이 되고, 당신에게 더 큰 헌신이 됨으로써, 신이 당신과 함께 더 머물수록, 신은 당신의 체험에서 더 깊어진다. 여기서 신은 개체라기보다는 맥락에 가깝고, 권능을 가진 존재라기보다는 관계의 더 큰 체험에 가깝다. 이런 식으로 신은 당신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일 없이, 당신을 통해 일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세상에서 당신의 초점을 잃지 않고 신과 함께 일할 수 있다.

아주 강한 것이 아주 작은 것을 통해 일하고, 작은 것을 확인해주고, 존중하고, 복원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바로 우주에서 앎의 위대한 천재성을 나타낸다. 이것이 신이다. 신은 크고, 당신은 작다. 빛은 당신을 통해 비추지만, 당신 눈을 멀게 하지 않는다. 현존은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을 압도하지 않는다. 지혜는 당신을 통해 말할 수 있지만, 당신의 흔적을 없애지 않는다. 당신은 드러난 표현이지만, 신은 그 근원이다. 여기서 당신의 마음과 몸은 더 큰 표현과 목적을 위한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계획된 곳과 필요한 곳에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발현되도록 이것을 허용하는 것, 그것이 계시이다.

그러므로 계시는 삶에서 목적과 의미와 방향이 서서히 커지는 체험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 삶에 계시가 있도록 허용하고, 남들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계시를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면, 계시는 당신에게 드러날 것이다. 계시는 당신에게 절대 근간이 될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당신이 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더 큰 현존의 체험으로 축복받을 것이다. 은총이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현존에서 이 은총을 체험할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말로 전할 수 없고 심지어 행동으로도 보여줄 수 없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 내면에 있는 앎에 불을 붙일 것이다. 왜냐하면 은총에 대한 그들의 응답은 그들의 개인 마음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앎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입문이고, 세상에서 신이 하는 일의 증표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계시이겠지만, 누구도 미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도 거창한 힘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므로, 평가에 잘못이 없을 것이다. 화신이 없을 것이고, 성인도 없을 것이다. 신비하고 경이로운 어떤 것이 당신들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며, 이것은 갑작스럽고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영속적이고 깊이 스며 있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이 삶을 돌이켜보면, 어쩌면 이런 지속적인 현존의 느낌을 한두 사람과 체험한 것을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독특하면서도 미묘했는지 상기해보라. 그들의 현존에서 당신이 느낀 것, 그들의 특이한 어떤 것, 그들이 말하지도 밝히지도 않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라. 그들에게는 특이한 어떤 것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현존이 있었다. 아마 이런 체험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돌이켜볼 수는 있다. 왜냐하면 이 체험은 그런 만남이 즐거웠든 아니었든, 당신이 만난 다른 모든 만남과 극명히 대조되기 때문이다.

신이 무대 뒤에서 일하는 것처럼, 계시도 무대 뒤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이렇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내준다. 어떤 굴종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그 결과가 있을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큰 원천을 신성시하는 것으로, 그들 자신을 존중한다.

계시는 당신 회복의 일환이다. 계시는 아마 매우 느리고 점진적일 것이다. 당신은 계시를 매 순간 경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당신의 체험들 사이에 시간 간격이 클 수 있지만, 이러한 시간 간격은 당신이 진보함에 따라 줄어들 것이다. 2년마다 한 번 경험하던 것이, 어쩌면 6개월마다 한 번, 그런 다음 3일마다 한 번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나아갈 것이므로, 이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은 계시 없이 실행에 옮기는 법을 배웠으므로, 계시가 매 순간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계시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당신은 정중하게 계시에 마음을 열며, 당신 안에 현존이 채울 공간이 있으므로, 현존이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안다.

당신에게 계시가 일어날 것인가? 앎의 학생이 되라. 앎에 가까이 다가가라. 앎에서 진보한 사람들과 어울리라. 그리고 당신처럼 시작하는 사람들과도 어울리라. 전에 배운 것은 잊어버리라. 당신이 이미 진보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초보자가 되라. 열린 마음을 가지라. 진보했다고 주장하지 말라. 당신이 진보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느 순간은 대단히 멀리 왔다는 느낌이 들다가, 그 다음날은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개인 마음이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개인 마음은 계속 진행할 수만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하면서, 바뀔 것이다. 왜냐하면 큰 힘이 내면에서 서서히 드러나서, 다른 어떤 것에서도 결코 받을 수 없던 안정감을 개인 마음에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의 개인 마음은 당신 내면에 있는 큰 힘에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몸은 마음을 섬기고, 마음은 영을 섬길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관계이다. 그러면 당신은 혼란과 양가성에서 벗어나, 큰 자유를 얻을 것이다. 이 자유와 함께, 은총이 당신과 함께 머물고, 당신에게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은총을 담을 역량이 있고, 은총에 마음을 열 것이기 때문이다. 고요와 침묵 속에서, 신의 은총이 당신에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