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의미

The Meaning of Christmas

1994년 12월 23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에게
계시되다

이 녹음에 관하여


당신이 이 오디오 녹음에서 듣는 것은 메신저 마샬 비안 서머즈를 통해 천사의 회중이 말한 음성이다.

여기에, 언어 차원을 넘는 신의 본래 메시지는 지구를 관장하는 천사의 회중에 의해 인간의 언어와 이해로 번역된다. 그리하여 회중은 메신저를 통해 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놀라운 과정에서, 계시의 음성이 다시 말하고 있다. 말씀과 음성이 세상에 있다. 역사상 최초로 녹음된 계시의 원음을 당신과 세상이 체험해볼 수 있다.

당신이 이 계시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당신과 당신 삶을 위해 계시의 유일한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데 마음을 여는 사람이 되기를 빈다.



독자에게 알림

이 번역은 영어 원문 번역을 자원한 새 메시지 학생이 협회에 제공하였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새 메시지 일부와 만날 기회를 갖도록 이 같은 초기 형태로 이 번역물을 세상에 내놓는다.

크리스마스는 개인의 내면에 앎이 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생애가 그 예이다. 이것은 예수조차 이해할 수 없던 것으로, 큰 힘이 그의 내면에 출현하여 그의 삶을 붙들고, 그를 안내하여, 크고 중요한 그의 사역을 표현하도록 이끄는 불가시존재들과 그를 결합했을 때 일어났다.

그래서 그가 실제로 보여준 것은, 비록 크게 곡해되고 남용되기는 하였지만, 개인의 내면에 앎이 출현하는 것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비록 예수가 이상화되고, 그의 삶이 독특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되고, 다른 모든 이가 받드는 위치에 그가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의 삶은 개인의 내면에 앎이 출현한 것을 보여준다.

이 출현은 당신에게도 가능하며, 삶에서의 큰 운명과 높은 목적을 나타낸다. 이것은 당신이 예수와 맞먹는 실연을 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범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실연은 독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실연도, 예수의 실연만큼은 눈에 띄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독특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큰 조직의 일부였듯이, 당신 또한 내면의 앎을 표현함으로써 큰 조직과 결합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자기 삶을 예수의 삶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당신 내면의 영적 힘인 앎의 의미를 배워야 하며, 이 힘이 당신의 주변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또 예수 시대에도 이 세상에서 일했고 지금도 이 세상에서 일하는 영적 세력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배워야 한다.

예수는 지금, 그가 지구에서 한 개인으로 살던 시기에 그를 안내하고 그에게 조언하고 위안을 주던 불가시 존재들에 속해 있다. 이제 예수는 불가시 존재들로 이루어진 큰 연합의 일원이다. 지구에서 이제는 당신의 시대이다. 당신은 예수와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당신은 예수와는 다른 실연을 할 것이다. 비록 그 당시에 인간에게 있던 많은 명백한 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명백하기는 하지만, 인류는 이제 큰 공동체 현실에 직면해 있으며, 단일 세계 공동체가 될 필요성과 그에 따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예수는 그의 시대에 이런 문제들을 다룰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의 사역은 달랐다. 그의 사역은 그가 살던 시대에 필요한 것들과 그 시대의 진화 발전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당신 시대에 필요한 것들과 이 시대의 진화 발전을 충족시켜야 한다.

당신은 생각의 힘을 바탕으로 이 일을 할 수 없고, 의지가 굳센 사람이 되는 것으로도 이 일을 할 수 없으며, 사회에 저항하거나 사회 제도를 공격하는 것으로도 이 일을 할 수 없다. 당신은 오직 앎과 함께할 때만 이 일을 할 수 있고, 당신 내면에 앎이 출현하기 시작할 때 당신을 도와주는 불가시 존재들의 힘과 함께할 때만 이 일을 할 수 있다.

오직 앎만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오직 앎만이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힘이 있다. 오직 앎만이 선과 선한 의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직 앎만이 두려움과 적개심을 중화할 수 있다. 오직 앎만이 세상을 축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장래성은 앎을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즉, 앎의 매개체, 앎이 말하고 행동하고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사람, 은총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 더 큰 정신으로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더 큰 권능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더 큰 연민으로 잘못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직 당신 내면의 앎만이 이렇게 할 수 있으며, 앎만이 이런 큰 표현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이제 당신의 크리스마스이다.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기념일만이 아니며, 단순히 예수만 기리는 날도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가족이나 친구에게 안부를 묻기만 하는 날도 아니며, 단순히 일 년 중 며칠 동안 선물을 주고받기만 하는 날도 아니다.

비록 이 모든 것이 크리스마스에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더 크다. 그 의미가 당신에게 더 커지게 하라. 그래서 이 크리스마스가 당신이 세상에 온 큰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회복하기 위해, 즉 그 목적을 받아들이고 체험하고 따름으로써 공헌하기 위해 이 세상에 파견되었음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게 하라.

이 크리스마스가 당신 삶은 세상에서 단순히 기본 욕구를 가진 한 인간이 되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당신이 기억하는 시간이 되게 하라. 당신 자신의 작은 모든 측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조화롭게 통합하고 그 역할을 다하게 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큰 부분인 이 큰 부름과 큰 목적이다.

이 큰 목적이 없다면, 당신은 분열될 것이며, 개성과 마음의 측면에서는 온전함이나 통합을 위한 기반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 큰 목적이 없다면, 당신은 생존하고 성취하는 데 고군분투하겠지만, 만족하지 못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큰 목적을 성취하지도 큰 부름에 응답하지도 않고 있음을 감지하고 느끼고 알 것이다.

이것이 당신을 위한 크리스마스이다. 크리스마스란 일 년에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니며,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나 당면한 어려움을 모두 뛰어넘어, 당신에게 큰 사명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삶에서처럼, 당신도 큰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당신은 큰 사명이 있음을 느끼고, 그 사명이 드러나도록 허용해야 하며, 당신 혼자서는 큰 사명을 성취할 수 없고 큰 사명은 당신 혼자만을 위한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사막에서 방황하고, 세상의 유혹을 경험할 것이며, 드러나는 자신의 이 큰 부분과 개인적 소망, 선호,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처럼, 당신은 이 큰 힘과 큰 목적이 당신 삶보다 더 우선시되고, 당신 삶을 감싸고, 당신 삶을 재조정하여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이다.

그리스도는 한 개인이 아니라 큰 영성의 전형이다. 그리스도를 개인이라고 생각하거나, 단순히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고 그렇지 않은 다른 모든 이와 구별되는 자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앎을 공헌하고 신성을 표현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놓치게 된다.

예수는 독특한 삶을 살았다. 당신은 그와 같은 삶을 살도록 요청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방식으로 그의 시대에 행한 것과 같은, 계시와 실현의 과정, 행동과 공헌의 과정을 밟도록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당신의 실연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경우, 현자는 드러나지 않아야 하며, 과시하는 일 없이, 많은 관심을 끌지 않고 공헌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은 부풀려지고 신격화되었지만, 여전히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신에게 자신을 내맡길 수 있다면, 자신의 길을 찾을 것이고,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나 주변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위안을 느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부의 힘에 [무릎 꿇고]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 내면에 있는 창조주의 선물이자 다른 사람 내면에도 있는 동일한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 또 당신의 마음과 이 선물이 결합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과 이 선물이 결합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신성을 실연하는 것이다.

신에 이르는 길은 삶과 재결합하러 가는 길이며,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과 관계를 맺으러 가는 길이다. 그 길은 도피 수단이 아니고, 환상도 아니며, 도락의 궁극적 형태도 아니다. 그 길은 삶과 재결합하는 것이다. 당신은 단번에 삶과 재결합할 수는 없으며, 한 걸음씩, 한 측면씩, 한 사람씩 삶과 재결합해야 한다.

앎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과 관계를 맺는 당신 능력의 기반이다. 앎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오직 이익을 얻으려고만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이득을 취하거나 보호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삶을 이용한다. 그들은 자신의 애정을 거래하고, 자신의 감정과 협상한다. 이는 결합의 한 형태라기보다는 상업의 한 형태이다. 대가를 지불하고,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것이 관계의 진정한 의미가 될 수 있는가?

그리스도 미사는 신성한 관계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신과 결합한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신의 천사 세력인 불가시 존재들과 결합한 사람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미사(The Mass of Christ), 즉 크리스마스(Christmas)의 의미이다. 이것은 한 개인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관계를 인지하는 것이다. 즉, 자기 내면에 있는 앎과 자신의 관계, 불가시 존재들과 자신이 맺은 본질적인 유대 관계, 인류에 대한 의무, 삶에 대한 친밀감 등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관계를 기념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미사이다.

그래서 당신의 길은 관계로 되돌아가는 길, 로맨스가 아닌 관계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당신은 불가시 존재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신은 앎과 근본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앎에 책임이 있다. 당신은 공헌자가 되라고 당신을 이 세상에 파견한 당신의 영적 가족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신은 참여하고 공헌하려고 온 삶의 무대인 자연계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신은 공헌과 소통의 매개체인 당신 마음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신은 당신 마음의 매개체인 육체, 당신이 여기 있는 동안 세상에 참여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인 당신 육체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앎과 함께할 때, 이런 관계가 드러나게 되고 당신 의식에 다시 자리 잡게 된다. 앎과 함께할 때, 그 관계들은 당신 내면에서 조화를 찾고, 당신 자신과도 조화를 이루고, 세상과도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앎은 근본적인 기반이고, 당신 삶과 존재의 본질이다. 앎은 신이 당신에게 준 선물이다. 앎에는 당신이 세상에 할 공헌이 담겨 있으며, 그 공헌을 찾고 행하는 데 필요한 핵심 인물들을 알아보는 능력이 담겨 있다.

예수가 한 것처럼, 당신은 이 큰 힘을 찾아 이 힘이 드러나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 힘은 당신보다 더 크고, 예수보다 더 크다. 이 힘은 예수를 붙든 것처럼 당신을 붙들 것이다. 이 힘은 불가시 존재들에게 예수의 마음을 연 것처럼 불가시 존재들에게 당신 마음을 열 것이다. 이 힘은 당신을 세상에 공헌하도록 이끌 것이다. 이 힘은 이 세상에 당장 필요한 것들에 봉사하고 이것들을 해결하도록 당신을 이끌 뿐만 아니라, 예수의 시대에 예수에게 했듯이, 미래에 대비하여 세상을 준비시키도록 당신을 이끄는 것이기도 하다.

만일 당신이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나 오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람이나 소유물과의 끝없는 로맨스에서 평화를 찾지 못한다면, 또 세상을 지켜보며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느끼고 세상의 부름을 듣는다면, 당신은 자기 내면에도 있고 세상에도 있는 앎에 응답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삶에 도취되는 일 없이 삶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고, 웅장함이 있고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는 삶을 체험하도록 마음을 열 것이다. 당신은 크리스마스에 당신 자신을 열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삶을 축하하는 것이자 삶의 큰 과정으로, 앎과 공헌을 향해 당신을 나아가게 한다.

이 크리스마스에 큰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이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는 당신의 의무와 책무보다 더 크고, 삶에 필수적이지 않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삶의 기본 필수품을 구하는 일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당신은 인류의 더 큰 교육과 고양을 위해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할 목적으로 이곳에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세상에 베풀기 위해, 또 세상에 있기 위해 이곳에 파견되었다. 세상은 당신이 필요하며, 당신이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때, 세상이 무엇을 요청하고 당신이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경험할 것이다.

그때 당신은 당신의 응답을 발견하고, 당신의 선물을 발견할 것이다. 또 당신의 선물과 함께, 당신 선물의 한 부분이 되는 이들, 즉 당신이 선물을 줄 수 있도록 도울 이들과 그 선물을 받을 이들을 모두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베풀 때마다, 그것은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개인적 이익과 무관하게, 심지어 이해조차도 못한 채, 당신이 다른 사람을 지원하거나 행동을 취하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그것은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자신이 앎에 의해 움직이고 앎으로 공헌하는 매 순간을 축하하는 것이다. 비록 크리스마스를 일 년 중 특별한 시간으로, 달력에 적힌 하나의 행사로 기념하지만, 크리스마스는 당신이 삶에서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체험이 되기로 되어 있다.

그러면 당신은 예수를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당신이 예수의 말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가 밟은 과정을 밟고, 그가 보여준 현실을 차츰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당신이 예배하거나 숭배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당신이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있지 않다. 그러기보다는 당신의 친구, 동반자, 손위 형제가 된다. 그리고 그의 실연, 그의 삶, 그의 고통, 그의 성취를 모두 당신 스스로 경험할 것이므로 이것들이 당신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당신은 그를 우상화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함을 알 것이다.

당신은 그의 이름으로 세워진 종교들이 그의 삶을 비춘 은총, 그의 활동을 완전히 바꿔 놓은 은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당신은 그와 가까워질 것이고, 그도 당신과 가까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내면에서 앎의 출현을 경험하는 모든 이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한 영성을 회복하는 모든 이와 함께한다. 그는 삶의 큰 부름과 목적에 응답하는 모든 이와 함께한다.

당신 혼자 이 일을 맡아서 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비록 처음에는 당신이 다른 과정과 다른 방식을 따를 수 있도록, 사람들과 하던 활동을 바꿔야 할 수도 있지만, 그 다른 과정과 방식은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데려갈 것이고, 당신의 관계를 성스럽게 할 것이며, 당신들의 개인적 욕구와 관심사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넘어 그 관계에 큰 의미와 가치를 줄 것이다.

은총은 당신 내면에 있으므로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은총은 당신의 관계가 형성되고 작용하는 기반이므로 당신의 관계와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 은총을 체험할 때마다, 그 순간이 아무리 드물게 오더라도, 각각의 순간은 크리스마스의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큰 공동체에서 알려진 예수의 이름이자 불가시 존재들 사이에서 예수를 부르는 이름인 ‘지저스 케더 레나’에 대한 삶을 기리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당신에게도 앎을 향한 여정이 있음을 그의 삶을 통해 상기하라. 당신 또한 발견해서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하는 큰 목적과 책임이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불가시 존재들이 당신과 함께 있고, 응답하라고 당신을 부르고 있음을 상기하라. 그리고 당신이 응답함에 따라, 그들은 당신에게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들이 점점 더 필요할 것이고, 이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체험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년 이 시간이 축복하는 날인 동시에, 상기하는 날이 되게 하라. 이 시간이 당신으로 하여금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로 향하게 하라.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에 베풀고, 현재 세상에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도록 돕고, 세상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야 인류가 큰 공동체를 만나고 그 안에 있는 다양한 모든 종족을 만나는 데 대비할 수 있으며, 또 큰 단일 공동체가 되어 인류의 기반을 찾고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그리하여 지구를 보존하고 큰 공동체에 있는 문명의 더 큰 조직망에 참여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수준에서 공헌하든, 또 이런 큰 진화적 변화와 출현에서 당신이 하는 역할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이 크리스마스를 통해 당신에게 부름이 있고 당신이 응답하려고 한다는 것을 상기하라. 왜냐하면 이것이 삶에서 성취하고 만족할 유일한 방법이며,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유일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당신 또한 세상에 봉사하러 왔다. 당신 또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세상을 준비시키려고 왔다. 당신 또한 세상에 앎이 계속 살아 있게 하고, 인류가 계속 나아가게 하려고 왔다. 당신 또한 그리스도 미사에 참여하고, 세상에 있는 신성한 관계를 축하하는 데 참여하고, 세상에서 큰 목적과 활동을 실현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자만심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앎이 당신 삶을 단순하고 조화롭게 할 것이고, 당신을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는 모든 경향을 중화할 것이며,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잘못된 이해와 적용을 바로잡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신의 여정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당신은 단지 큰 연합의 작은 부분이며, 당신이 의지할 당신의 관계, 즉 다른 이들과 당신의 관계, 불가시 존재들과 당신의 관계가 당신의 기반이 될 것임을 알 것이다.

위대함은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 안에 있지만, 당신 자신만을 위해 그 위대함을 요청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깨달을 것이다. 위대함은 그보다는 당신 내면에 있는 힘과 현존으로, 당신 삶을 조화롭게 하고, 당신을 이 세상으로 데려온 목적과 큰 연합의 현실을 드러낼 것이다. 위대함은 당신을 통해 흐를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활력을 줄 것이며, 당신의 말과 행동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도전하도록 자극할 것이다. 왜냐하면 앎이 당신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위대함은 당신을 이끌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게 하고, 앎을 체험하게 하며, 진정한 관계를 체험하게 하고, 영원한 삶의 관점에서 삶의 목적·의미·방향을 체험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예수를 생각할 것이고, 그가 성공한 것에 감사할 것이다. 의심스럽고 불확실할 때, 또 길을 이해할 수 없고 분간할 수 없을 때, 당신은 그를 기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해서 여행했으며, 그의 목적지를 만났고 찾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실연과 희생과 고난을 통해 당신에게 유산을 남겼으니, 당신은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 그는 다른 많은 사람이 한 것처럼 세상에 앎이 살아 있게 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으며, 그의 공헌이 많은 사람의 마음과 가슴에 아직도 살아 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에 다가가라. 그리스도 미사를 받아들이라. 크리스마스는 어떤 종교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한다. 크리스마스는 다세계 큰 공동체 전역에서 일어나며, 어떤 단체나 나라, 어떤 종교, 어떤 교회나 조직에도 속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신이 세상에서 하는 활동으로,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앎을 활성화하고, 이승과 저승에 있는 영적 가족과 그 개개인을 재결합하며, 앎의 출현을 돕고, 앎이 이 시기에 인간 세상에 주려고 하는 모든 선물이 드러나도록 돕는다.

이것이 당신의 크리스마스이다. 예수가 당신과 함께 있다. 불가시 존재들이 지켜보고 있다. 당신은 그들을 느낄 수 있고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당신을 압도하거나 당신에게 너무 큰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너무 가까이 오지는 않겠지만,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들을 잊지 말라. 그들은 당신을 잊지 않았다. 예수를 잊지 말라. 당신이 그와 공명할 때, 그도 당신과 공명할 것이다.

이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것이다. 이때 축하 소리가 울릴 것이다. 이때 당신은 시간 그 자체 속에 있으면서도 영원을 느낄 것이다. 이때 당신은 아무 목적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큰 목적을 느낄 것이다. 이때 당신은 단절된 인간 종족 사이에서 연결을 느낄 것이다. 이때 당신은 낙담하고 의기소침한 사람들 속에서 활력을 느낄 것이다. 이때 베풂은 당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며, 당신이 통제할 수는 없지만, 온전히 참여하여 일어날 것이다.

이 축복의 기도로 마무리하자.

“큰 공동체 전역에서 앎의 현존은 모든 삶에 활력을 주고, 모든 삶을 통합하며, 무지와 증오와 경멸의 분열을 넘어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니 내가 앎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기를. 그러니 내가 앎을 구현할 수 있기를. 그러니 내가 앎의 한 표현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내 마음에 빛이 있고, 내 몸에 활기가 있기를. 내 관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를. 그리고 나는 시작할 준비가 되었으니, 내 앞에 길이 열리기를.”

낫시 노바레 코람